로마의 역사
1세대: 왕조시대 (BC 753 ~ BC 500)
2세대: 공화정 시대 (BC 509 ~ BC 27)
3세대: 제국주의 시대 (BC 26 ~ BC 418)
역사적 분기점
콘스탄티누스 황제 척령 (AD 313) - 이단으로 지급된 기독교를 공인하게 된다.
로마제국의 분할 (AD 395) - 동로마, 서로마로 분할
로마제국의 멸망 - 서로마 (AD 476), 동로마(비잔틴제국) (AD 1453)
그리스와 로마의 관계
로마인의 지적 생활은 대부분 그리스인의 사상으로 채워져 있고, 로마 건축은 그리스 양식을 답습했다 (EX. 기둥, 박공, 코오니스)
그리스인의 건축은 신앙심 깊은 예술가로서 영묘를 조각하는 신전 건축이 건축적 업적이었다. 로마인은 건축을 구조로서 보았고, 보올 트나 돔을 이용한 광활한 공간에 몰두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전
그리스의 신전은 하나의 영묘로서 도심과 분리되어 있다. 그에 반해 로마의 신전은 도심 가로상에 위치해 있다.
전자는 신성을 표했했다면, 후자는 제국의 자부심, 즉 도시적 기념물을 표현했다.
수도의 발명과 실용적인 건물
로마인은 수도를 실제적으로 만들어냈다. 수도가 등장을 하면서 도시에는 극장, 신전, 정원, 임대주택 등 도시를 형성하는 수많은 건물 형태들이 생겨났다. 로마는 제국주의의 외부적인 표현을 위하여 수도의 형태를 대규모 방식(정형적인 도시의 축선, 개선문, 멋진 궁전, 대가로, 건물의 기초와 좌우대칭의 속성)으로 형성했다
로마 건축물의 구조
로마인들은 거대한 건물들을 필요로 했다. 그들은 품질이 좋은 포졸란을 갖고 있었고, 돌과 벽돌 그리고 콘크맅리트로 매씨브하고 견고한 건축을 했다. 로마의 건축은 반원형 아치가 기반으로서, 그것을 완전히 활용헀다. 아치는 작은 돌을 이용해서 넓은 면적을 덮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반원의 아치는 '센터링'이라 부르는 임시적 목재아치가 벽체 사이에 맞춰지고, 수많은 쐐기 형상의 돌들(홍예석-부스와 르)이 홍예 틀 위에 놓인다. 마지막에 홍예석(키스톤)이 자리 잡으면 아치가 완성되고, 목재 센터링이 제거된다.
일련의 아치들이 연속해서 만들어지면 이것을 '배럴 볼트(터널 볼트)'라고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볼트 형태이다.
이러한 터널 볼트를 십자형태로 교차를 시키면 '그로인볼트(크로스 볼트)'가 만들어진다.
원형 공간 위에 수많은 아치를 축조하고 아치들을 360도 돌리게 되면 그 결과 돔이 형성된다.
아치, 아케이드, 보올트, 돔은 모두 아치의 주제를 변형시킨 것들이다. 이러한 양식들은 유럽 건축의 기반이 되었다.
아치는 외부의 추력을 일으켜서 항상 벽체를 밀어뜨리려고 한다. 어떠한 아치나 볼트, 돔은 두꺼운 벽체 또는 버트레스(버팀력)에 의해서 추력을 견뎌내었다.
- 그로인볼트의 발명
로마인들의 그로인 볼트 방법은 아주 기발한 발견이었다. 그로인 볼트는 정사각형 베이(한 칸) 위로 두 개의 교차 보올트를 구성한다. 이러한 구성은 5가지의 문제점을 해결했다,
1. 볼팅 베이의 네 모서리에 추력을 집중시킨다.
2. 이것은 이론적으로 네 모서리의 버트레스를 제외한 벽제 전부를 제거시킬 수 있다.
3. 볼트 아치 아래에 커다란 창문(클리어 스토리)을 만들어 채광할 수 있다.
4. 하나의 베이에 사용된 목재 센터링을 해체한 후 다음 베이에 다시 사용할 수 있다.
5. 베이들 간에는 오픈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 벽체가 없기 때문에
이이러한 구조적 요소들 (네이브, 아일, 볼트, 클리어 스토리)은 모두 유럽 건축에 그대로 전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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